Kasuya Kou 인터뷰
JAPANESE ENGLISH CHINESE KOREAN
– INTERVIEW 01
'인생은 균형이 잡혀 있다'
지금 게으름을 피우면 나중에 후회한다.
반대로 지금 열심히 하면 미래에 보상을 받을 수 있다

KASUYA KOU糟谷 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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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야기현의 게센누마시라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쓰나미의 피해를 입은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리틀 리그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는 전국 3위의 성적을 남겼고, 중학교 2학년 때 전국의 강호 학교에서 스카우트가 많이 왔습니다.
당시 우리 아버지는 회사를 운영하셨고, 매일 식탁에서의 대화는 공부하라 숙제했다 등의 대화가 아닌 , 「너는 하면 된다」 「좋아하는 것을 해라」등의 대화였습니다
어렸을 때의 교육은 매우 중요했고, 저에게는 중학교 때 은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
고마쓰 교장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은 매주 월요일 열리는 조회에서 꼭
인생은 균형이 잡혀 있다.
지금 게으르면 장래에 고단한 보복이 온다.
반대로 지금 열심히 하면 미래에 보답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구로 진로를 고민하던 중 아버지의 '너는 하면 되는 거야' 고마쓰 교장의 '인생은 균형이 잡혀 있다' 는 말을 가슴에 품고 지역 게센누마를 떠나 명문 센다이 육영학원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센다이 육영에서의 생활은 야구 연습보다 기숙사 생활이 매우 어려웠고, 매일이 지옥이었습니다.
가장 놀고 싶은 나이에 놀지 못하고, 한창 먹을 시기에 매일 차가운 밥이고, 방에는 TV도 에어컨도 없는 4인 방이 었습니다
"이런 생활...무조건 감옥이 편하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과 고마쓰 교장의 말씀, 그리고 센다이 육영고중야구부 사사키 감독의 '진심은세계도 바꿀수 있다' 는 말을 믿고 매일 누구보다 연습을 했고 마지막 여름 대회에서는 3번 라이트로 고시엔 16강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야구 엘리트 코스이지만, 내 마음은 달랐다

그 후로는 고등학교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도쿄 6개 대학이, 센다이 6개 대학으로부터 추천이 있었습니다만 프로 야구 선수를 많이 배출하고 있는 토호쿠 복지 대학에 진학해, 1학년부터 4번 타자로서 활약해 전일본 멤버에도 선출되었습니다.
주위에서 보면 야구 엘리트 코스지였지만 제 마음속은 달랐습니다.
사실 중학교 2학년 때 놀림을 받은 자세 때문에 야구에 대한 몸의 감각이 어긋나 버렸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 7년 동안은 그 어긋남을 되돌리기 위해 매일 연습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되돌리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미국에서 즐겁게 야구를 하고 끝내자는 마음으로 미국메저리그로 갔습니다
7년간 야구와 기숙사 생활이라는 격리된 환경에서 갑자기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내리는 순간 그동안 야구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던 나에게 미국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잡고 일본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사회를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로스앤젤레스에 생긴 초밥집에 미국인이 줄을 서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미국은 건강보조식품강국입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단백질이나 비타민류입니다. 미국인들이 해산물 요리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해산물 건강보조식품 수요가 늘어나지 않알까?
라고 생각한 저는 야구를 접고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큰 결단을 처음으로 하였는데 바로 그 때입니다.
야구를 그만둔 제가 먼저 시작한 것이 센다이역 앞에서 1컬레에 300엔 하는 구두닦이 사업입니다.
사업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과대하지만 당시의 저는 건강식품연구 개발비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각오로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훌륭한 사업이었다고 할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하우스 클리닝 사업까지 확대해 28세에 제품 완성과 함께 쓰리피스회사를 창업하였습니다.

주변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한 가지 일을 계속하는 신념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것은, 보통 네트워크 비즈니스 주최 기업은, 대부분이 경험자끼리 공동 경영으로, 어느 정도의 조직을 확보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에 비해, 업계를 전혀 모르고 조직도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일어선 것이 쓰리피스라는 것입니다.
쓰리피스는 그때로부터 17년이 지났습니다.
도중에 동일본 대지진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제를 경험하고 지금이 있습니다.
주위에 휩쓸리지 않고 한 가지 일을 계속하는 신념.
그리고 단지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것을 도입해 가는 유연함.
그것이 지금의 쓰리피스의 발전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최근에 일어선 신흥 기업은 쓰리피스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업계에 있어서도 혁명적입니다.
저는 쓰리피스의 경영자이기도 하지만 창업자이기도 합니다.
고용된 경영자는 많이 있지만 고용된 창업자는 없습니다.
창업자는 글자처럼 처음부터 만들어갑니다.
저는 회사 운영뿐만 아니라 고객 및 데이터 입력 작업, 이벤트 기획, 그리고 디스트리뷰터 활동도 모두 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디스트리뷰터 활동 기간이 제일 깁니다.
네트워크 비즈니스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아직도 세상에서는 제대로 인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에 네트워크 비즈니스를 했다는 것만으로 정치인이라면 제명되고, 공무원이라도 징계 처분이 될 정도로 이미지가 나쁜 업계입니다.
그 원인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부분에 있습니다.
인재 교육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다음날부터 네트워크 비즈니스에 대해 설명을 하고
옅은 금융지식으로 간단하게 투자를 하고,
그중이는 범죄행위를 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유인행위를.
하는 살 람들이 있습니다.
이래서는 영원이 업계의 이미지는 변하지 않습니다.

꿈이 있는 아이들이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네트워크 비즈니스는 물건이나 금융이 상품이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당신으로부터 사고 싶다」 라고 생각해 줄수 있는 사람을 많이 키워간다면 그 사람 자신이 멋진 어른, 멋진 경영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쓰리피스는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전개하고 있는 네트워크 비즈니스의 백화점같은 이미지로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진 분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훌륭한 서비스를 자녀나 손자, 가족이나 소중한 친구와 공유해 보세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쓰리피스라는 회사의 역사, 사고방식, 목적, 비전, 그리고 무엇보다 개개인의 인재교육을 배움으로써 꿈이 있는 아이들이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주세요.
네트워크 비즈니스는 간단한 생각으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쓰리 피스를 통해서 자신의 인재 교육, 그리고 인재 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자신의 성공과 함께 업계의 발전, 그리고 국가 또한 좋아져 갈 것입니다.
회장이 된 지금, 이제는 현장에서 움직이는 회장으로서 앞으로 만나게 될 여러분의 성공 스토리에 다가가고 싶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쓰리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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